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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대박확률 20% 미만에 도전한다

이상훈 고양 2005. 10. 7. 15:06
[특집]대박확률 20% 미만에 도전한다
[뉴스메이커   2005-10-07 10:13:09] 

잭필드·디스크 닥터 등 히트 상품 ‘성공 뒷얘기’



“날씬한 몸매를 원하십니까?”
인포머셜 홈쇼핑에서 만들어낸 유행어 가운데 하나다. 채널마다 반복적으로 터져나오는 인포머셜 광고는 강한 인상을 남긴다. 이 제품을 쓰면 날씬해질 것 같고 저 제품을 먹으면 뚝 떨어졌던 밥맛이 돌아올 것 같다. 하지만 실제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는 제품은 몇 가지 되지 않는다. 인포머셜 홈쇼핑에서 성공하는 비율은 20% 미만. 10개 제품 가운데 1~2개가 겨우 대박이라고 명함을 내미니 핏빛 기운이 감도는 ‘레드오션’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본전이라도 찾으려면 기를 쓰고 달려들어야 하는 치열한 전쟁터다.

경쟁이 치열하다보니 ‘대박’의 기준도 달라졌다. 제품의 단가에 따라 다르겠지만 최소 10만개 이상 팔려야 명예의 전당에 오를 수 있었는데 지금은 1만개만 팔려도 대박상품이란 소리를 듣는다.

‘398의 신화’ 코리아홈쇼핑

인포머셜 홈쇼핑하면 떠오르는 여러 가지 제품 중에 단연 첫손에 꼽히는 것이 있다면 ‘잭필드’다. 잭필드는 유머와 패러디의 소재로 사용될 정도로 네티즌 사이에선 웬만한 명품 브랜드에 버금가는 인기를 끌고 있다.

잭필드 브랜드를 내세운 코리아홈쇼핑의 돌풍은 바지나 점퍼 등의 의류 3벌을 한꺼번에 판매하는 ‘3종 세트’에서 시작됐다. 3벌 가격이 1벌 값도 안 되는 3만9800원이었으니 잭필드의 히트는 예견된 거나 다름없었다.

이전에는 없던 ‘후불제’ 정책도 잭필드의 위력에 힘을 보탰다. 후불제는 품질에 대한 자신감을 바탕에 깔고 있다. 코리아홈쇼핑의 이런 전략은 광고에도 그대로 표출됐다. 쏟아진 우유가 바지에 스며들지 않고 또르르 흘러내리는 광고를 보고 전화기를 들지 않을 소비자는 많지 않다.

먼저 물건을 받아보고 나중에 지불하는 후불제는 ‘저급한 품질의 물건을 싸게 판다’는 인포머셜 홈쇼핑에 대한 소비자들의 편견을 한순간에 무너뜨렸다. 한때 인포머셜 홈쇼핑에서 코리아홈쇼핑이 차지하는 매출비중이 70%에 달할 정도로 잭필드는 말 그대로 ‘초특급’ 태풍이었다.

코리아홈쇼핑이 ‘믿기 어려운 가격’으로 제품을 공급할 수 있었던 것은 박인규 대표의 전력과 깊은 연관이 있다. 박 대표는 삼성물산 출신으로 원단을 수입하고 관리하는 부서에서 오랫동안 실무를 맡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이때의 경험이 좋은 원단을 아주 저렴하게 들여올 수 있는 토대가 됐고 ‘398의 신화’로 이어졌다. 의상 디자이너였던 박 대표의 처제가 잭필드의 디자인과 품질을 높이는 데 일조했음은 물론이다.

2004년을 강타한 디스크 닥터

허리가 아파 고생하는 사람이 많은 우리나라에서 제대로 된 ‘물건’ 하나면 성공할 수 있는 가능성은 무척 높다. 인포머셜 홈쇼핑이 등장한 후 허리를 위한 제품들이 꾸준히 선보인 것도 이런 이유다. 하지만 어떤 제품도 정상에 오르지는 못했다. 지난해 어떤 제품도 넘보지 못하던 자리를 차지한 제품이 나타났다. 업계 관계자들이 지난해 최고의 히트상품으로 꼽는 ‘디스크 닥터’.

디스크 닥터는 벨트 형태의 의료기구로 공기를 주입하면 허리를 압박해 통증을 완화하는 제품이다. 매출액과 관련한 정확한 통계는 나와 있지 않지만 업계 관계자들은 “1000억 원 어치는 너끈히 팔리지 않았겠냐”고 추측한다.

디스크 닥터의 가격은 29만8000원으로 인포머셜 홈쇼핑에서는 초고가에 속한다. 아무리 허리가 아픈 사람이라도 선뜻 마음을 정할 수 없는 가격이다. 소비자가 느끼는 저항감이 만만치 않았을 텐데도 대박을 터뜨렸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받기에 충분하다.

디스크 닥터의 광고를 제작한 기서철 PD는 “디스크 닥터를 보는 순간 ‘틀림없이 된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역시 가격이 만만치 않아 고민스러웠다. 그래서 평소 친분이 있던 성우 배한성씨에게 SOS 신호를 날렸다. 출연을 망설이는 그를 설득해 광고를 제작했고 결과는 ‘초대박’이었다.

디스크 닥터는 의료기구는 많이 팔리기 어렵다는 불문율을 깨뜨린 제품이라는 점에서도 단연 돋보인다. 인포머셜 홈쇼핑에서 판매되는 제품 가운데 고전을 면치 못하는 분야 가운데 하나가 의료기구다. 의료기구는 광고 심의가 워낙 까다롭기 때문이다. 이런 점 때문에 의료기기를 가지고 도전하는 업체들은 비심의 광고로 치고 재빨리 빠지는 불법적인 판매전략을 택한다. 디스크 닥터는 정공법으로 온갖 난관을 돌파했다는 점 때문에 더욱 인정을 받는다.

‘우리도 대박이다’ 의외의 제품들

인포머셜 업계에서 두고두고 효자상품으로 회자되는 제품은 각종 매트들이다. 매트는 인포머셜 홈쇼핑이 태동한 초기 유선방송 시절부터 인기를 끈 유서깊은 품목이다. 매트는 전열선을 내부에 넣어 온도를 조절할 수 있는 개인용 난방 제품으로 탄생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참숯, 옥, 황토 등 건강과 관련 있는 소재를 넣어 새단장을 한 다음 ‘웰빙’ 신제품 목록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몇년 전에 비해 가격이 3분의 1 이하로 내려갔다는 점 외에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매트는 중견 탤런트들이 등장하는 단골 제품이기도 하다. 대개는 광고 제작비가 크게 올라갈 것을 우려해서 연예인을 꺼리지만 매트 광고에는 반드시 한 명 이상의 중견 탤런트가 등장한다.

초저가 여성 속옷세트도 조용히 히트를 기록한 제품이다. 속옷세트 판매를 담당했던 한 관계자는 “9900원에 15~20종의 속옷을 판매하다 보니 도저히 품질을 뒷받침할 수 없었다”면서 “차라리 1회용 제품에 가까웠다”고 회고했다. 그렇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본 결과 속옷세트는 이런 우려를 말끔히 걷어냈다. 일반 소비자들은 호기심에 한번 사본 뒤에는 다시 거들떠보지 않았지만 유흥업소에 종사하는 여성들에게서는 꾸준히 ‘러브콜’을 받았다.

몸짱열풍에 일조한 운동기구도 대박 목록에서 뺄 수 없는 제품들이다. 좁은 공간에도 설치가 가능하고 팔과 다리 운동을 한꺼번에 할 수 있다는 장점이 홍보되면서 집집마다 운동기구를 갖춰놓는 게 유행이 되다시피 했다.

특히 집중적인 복근운동이 가능한 제품으로 알려진 ‘AB슬라이드’는 대히트를 기록했다. 근육질 몸매의 외국인 남성이 시범을 보이는 광고는 남녀할 것 없이 구매대열에 줄을 서도록 만들었다. 한 관계자는 “AB슬라이드는 20년 전 미국에서 처음 선보였지만 별 재미를 못본 제품”이라고 귀띔했다. 미국 미운오리가 우리나라에서 백조로 거듭난 셈이다.




“내 마음 사로잡는 제품 선택해요”

인포머셜 업계‘미다스의 손’이춘명 굿 트레이드 대표

‘인포머셜 업계의 보이지 않는 미다스의 손.’
인포머셜 홈쇼핑에 관심이 없는 사람도 이름만 들으면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제품들이 있다. 이 가운데 ‘라꾸라꾸 침대’는 둘째 가라면 서러울 히트상품으로 꼽힌다.

우리나라에 라꾸라꾸 침대를 소개한 사람은 굿 트레이드의 이춘명 대표이다. 삼성동에 위치한 작은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대박의 주인공이라는 세간의 호칭과는 어울리지 않을 만큼 소박했다. 이 대표는 “얼굴을 드러내놓을 정도로 자랑스런 자리에 있지 못하다”며 사진촬영도 한사코 사양했다.

2001년 12월 우리나라에 첫선을 보인 후 지금도 한달에 수백대씩 꾸준히 팔려나가는 스테디셀러이다. 초대박 상품이라도 1년이면 수명을 다하는 인포머셜 홈쇼핑 세계에서 4년 가깝게 인기를 끌고 있는 제품은 라꾸라꾸 침대가 유일무이하다. 10만원대를 넘기기 힘든 업계 특성상 20만원에 가까운 가격으로 히트상품 대열에 올랐다는 점도 남다르다.

라꾸라꾸 침대는 간편하게 접어서 좁은 공간에도 보관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10여년 전부터 꾸준히 인기를 끌어온 일본 특유의 제품이다. 우리나라에는 비슷한 제품조차 없던 때였지만 시장상황은 만만치 않았다. 무엇보다 침대는 편안하고 커야 한다는 우리나라 소비자들의 인식 앞에 접이식 간이침대가 들어앉을 자리는 너무나 좁았다. 진짜 대박상품이 되려면 주부들을 공략해야 했지만 우선 급한대로 원룸에 사는 독신자들을 상대로 라꾸라꾸 침대의 인지도를 높이는 데 주력했다.

지방출신 국회의원들의 필수품이 될 정도로 틈새시장 공략에서 자신감을 얻은 그는 곧바로 주부들에게 마케팅 포인트를 맞춰 인포머셜 광고를 제작했다. 라꾸라꾸 침대를 아이들을 위한 보조침대나 손님용으로 하나쯤 사두면 좋은 필수품으로 탈바꿈시켰고 드디어 주부들의 지갑을 여는 데 성공했다.

이춘명 대표에겐 제품을 골라 투자할 때 반드시 지키는 몇가지 원칙이 있다. 첫째는 ‘자신의 마음을 움직이는 제품은 신중에 신중을 기해 선택하라’이다. 올 여름을 겨냥해 매주 한번씩 중국을 오가며 3개월 동안 준비한 차량용 냉장고도 품질대비 가격을 맞추기 어렵다고 판단해 눈물을 머금고 포기했다. 기존 제품보다 월등한 성능을 갖췄지만 마지막까지 그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는 실패했던 것이다. 그는 “대박에 취해 타당성 조사도 없이 이 상품 저 상품에 마구 투자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쪽박’으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말한다. 자기 자신의 마음도 사로잡지 못하는 제품을 소비자들이 사줄 리 만무하다는 뜻이다.

다른 나라에서 히트한 제품도 그의 기준에서는 안전하지 않다. 그는 “외국에서 성공한 물건이라도 우리나라 실정에 맞게 가다듬지 않으면 성공은 기대하기 어렵다”고 강조한다. 라꾸라꾸 침대도 ‘현지화’에 충실했기에 재미를 볼 수 있었다. 원래 조립식이던 라꾸라꾸 침대를 결합이 쉽도록 개선해 반품율을 크게 낮췄다. 조립이 조금이라도 까다로우면 그냥 반품해버리는 우리나라 소비자의 특성을 빨리 파악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한번 세운 투자의 원칙을 끝까지 지키는 것도 성공을 도왔다. 그는 건강기능식품 등 먹을거리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손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바가 아니지만 그만큼 위험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올 최고의 대박상품으로 뜬 글루코사민도 제품이 나오기 전에 누구보다 먼저 정보를 접했지만 투자하지 않았다.

배송을 직접 관리하는 것도 다른 사업자들과 다른 점이다. 그는 상품포장과 배송까지 세심하게 체크해야 고객들의 만족도를 최고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다고 믿는다. 3년 전에 판매한 제품을 아직까지 애프터서비스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지금까지 제품 가격에 큰 변동이 없는 것도 독특하다. 인포머셜 업계에서는 상품의 수명이 끝나는 시점이 되면 가격을 큰 폭으로 할인해 재고를 정리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라꾸라꾸 침대의 가격은 4년 전 그대다. 하루 아침에 가격을 내려 판매하면 누군가는 ‘속았다’는 느낌을 갖게 되고 이런 분위기는 제품의 품질을 의심하는 데까지 연결된다.

원칙을 철저히 지키기 때문에 그에겐 라꾸라꾸 침대 이후 두드러진 히트작이 없다. 그는 “쉽지는 않겠지만 노력하면 기회는 누구에게나 찾아온다”면서 “당분간 웰빙 트렌드가 지속될테니 환경이나 운동기구, 다목적 가구 쪽의 전망이 밝다”고 느긋한 표정을 지었다.




히트상품은 그의 손을 거친다

잭필드·디스크 닥터 제작한 ‘기베스트’ 기서철 PD

“이쪽 업계 사장님들은 저를 ‘공공의 적’이라고 부릅니다.”
인포머셜 홈쇼핑 업계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기서철 PD가 단연 ‘최고’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디스크닥터’ ‘김수미 꽃게장’ ‘잭필드’ 등 거의 모든 히트상품이 그의 손을 거쳐 대박의 기쁨을 맛봤다.

그런데 정작 당사자인 기 PD는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라며 오히려 스스로를 200만원선에 머물러 있던 인포머셜 홈쇼핑 광고의 제작비를 수천만원대로 폭등시킨 ‘주범’이라 했다. 하지만 그는 “돈을 몇 푼 더 벌어보겠다는 욕심 때문에 그런 것은 절대 아니다”라고 말한다. 제품을 부각시키기 위한 특수장비를 투입하고 컴퓨터 그래픽까지 동원하다 보면 정작 손에 떨어지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그는 “제품을 하나라도 더 팔리게 하는 데 제작비가 쓰였을 뿐”이라면서 “제 호주머니에서는 아직도 먼지가 풀풀 날린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정통 다큐멘터리 제작에만 매달리던 시절 푼돈 좀 벌어보겠다고 아르바이트로 만든 인포머셜 광고 한편이 그의 인생을 돌려놓았다. 그의 사무실 한쪽 벽면과 책상 위는 그동안 촬영한 제품의 견본들로 가득하다. 그동안 그의 손을 거쳐 광고로 만들어진 제품들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래서인지 그는 처음 제작한 광고가 뭐였는지 도통 기억해내지 못했다.

인포머셜 홈쇼핑에서 광고는 대박을 좌우하는 열쇠다. 제품의 가격과 품질이 아무리 좋아도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광고가 없다면 본전은 기대하기도 어렵다. 그렇다보니 부담도 크다. “제품을 들고 저를 찾아오는 분들은 대부분 판로를 찾지 못한 중소기업 사장님들입니다. 마지막 기댈 곳으로 여기를 찾아오는 데 당연히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죠.”

이제 그는 제품을 슬쩍만 봐도 얼마나 팔릴지 감을 잡을 정도가 됐다. 당연히 될 것 같은 제품에만 욕심을 낼 법도 한데 미심쩍은 제품이라고 매몰차게 내치지는 않는다. 자신을 찾아온 이유를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안 될 것 같은 제품에는 두배 세배 공을 더 들인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하지 말자고 만류한 제품을 성공시킬 때 밀려오는 쾌감은 무엇으로도 설명이 안된다”고 말했다.

‘잭필드’로 유명한 코리아홈쇼핑 박인규 대표와의 만남도 그랬다. 인포머셜 홈쇼핑에서 성공하기 힘들다는 의류였지만 브랜드와 품질을 내세운 정면돌파로 신기원을 이뤘다. 그리고 이때 제작한 광고가 처음으로 제작비 1000만 원을 넘긴 ‘작품’이 됐다.

하루에도 대여섯 곳에서 그를 만나기 위해 사무실 문턱을 밟는다. 업계에서 확실한 위치를 차지한 덕에 요즘은 제작을 의뢰하는 방문자보다는 제품 자체에 대한 의견을 듣기 위해 찾는 사람이 더 많다. 하루 일과가 대충 마무리 되는 시각이 보통 새벽 1시. 한때 하루에 5편까지 광고를 제작한 적도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바쁘지는 않았다. 지금은 한달에 평균 3편 정도를 만들지만 “그때보다 지금이 훨씬 더 정신없다”고 털어놓는다. 인터뷰를 하는 중에도 한 방문객이 회의실에서 그를 기다리고 그의 휴대전화는 잠시도 쉬지 않고 울려댔다. 명색이 프로덕션 대표지만 사무실 한 켠에 놓인 접이식 침대에서 토막잠을 자는 날이 더 많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유병탁 기자 lum35@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