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래시장은 끝내 문을 닫을지 모른다" | ||||
남대문 시장이 홍역을 앓고 있다. 대표적인 의류시장의 명성을 동대문 시장에 넘겨주고 그 자리에 악세사리와 잡화, 아동복 매장이 들어섰기 때문이다. 손님은 늘지 않고 애꿎은 경쟁업체만 늘어나고 있어 상가 주인들은 달갑지 않은 표정이다. 말 그대로 '포화상태'이다.
설상가상으로 남대문시장의 매출은 불과 일이년 사이에 3분의 1로 줄었다. 새벽마다 옷을 사기 위해 불야성을 이뤘던 젊은이들도 모두 동대문을 찾고 있으며, 수입의류 판매로 이름을 날렸던 남대문 무역센터마저 악세사리 전문 매장이 주를 이루고 있다. 남정상가에서 악세사리 도매업을 하고 있는 강은아 씨는 "남대문 시장에서 의류매장은 손으로 꼽을 만큼 없어진지 오래 됐다"며 한숨을 토했다. 그러면서 강 씨는 "남대문 시장뿐만 아니라 전국의 재래시장이 침체돼 있다"면서 그 원인을 "백화점과 대형할인마트의 등장"이라고 꼽았다.
특히, 강 씨는 "예전과 달리 시장에서 판매되는 제품도 품질이 우수하지만, 전국민적으로 불어닥친 '웰빙'바람 때문에 사람들이 백화점이나 할인마트에서 판매하는 대기업 물건을 선호하고 있다"면서 "이대로 가다가는 재래시장은 끝내 문을 닫을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가격' 경쟁에서는 승산이 있지 않느냐고 되묻자 강 씨는 "재래시장은 중간도매상이 마진을 붙여 팔기 때문에 공장과 직접 거래를 하는 백화점이나 할인마트 물건과 큰 차이가 없다"면서 가격 경쟁에서도 밀리고 있음도 시인했다. 또한 강 씨는 "브랜드를 선호하는 한국 사람들의 소비 성향도 큰 이유를 차지한다"면서 "신용카드도 사용할 수 있고, 상품권, 경품, 포인트 적립 등 많은 혜택이 주어지는 대기업들의 판매전략도 무시하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2006년 새해 맞은 재래시장 풍경 서민들의 경제력이 줄어들수록 재래시장 침체...반면 백화점 매출은 줄지 않아 서글서글한 눈매에 상냥한 미소가 마음을 편하게 하는 강은아 씨. 그녀는 남대문 초입에 위치한 남정상가 '25호' 악세사리 상점에서 도매업을 하고 있는 사장이다. 혹은 '바람난딸기' 가게 주인으로도 통한다. 보통 악세사리 상가에는 여성들이 많아 숫기가 없는 기자를 부끄럽게 할지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이날 만큼은 예외였다. 손님을 편안하게 해주려는 마음 씀씀이 때문이었다. 또한 주변 상가의 아주머니들이 '손님'이 왔다고 음료수를 내오겠다며 먼저 나서는 모습에서는 재래시장 특유의 정과 친근함도 느낄 수 있어 자연스럽게 미소가 터져 나왔다. 이래서 세상은 살 맛이 난다고 했던가. "재래시장을 주로 이용하는 고객은 서민들이에요. 그런데 경기가 좋지 않아서 서민들이 지갑을 열지 않아요. 서민들의 경제력이 떨어졌던 것도 재래시장의 침체로 이어지고 있는 중요한 이유지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서민들이 쉽게 구입할 수 없는 제품들은 잘 팔려요. 경기가 어렵다고 하는데도 백화점의 매출은 줄지 않고, 명품들은 더 잘 팔리고 있잖아요. 잘 사는 사람은 더욱 잘 살고 못 사는 사람은 더욱 못 살아서 그래요. 서민들은 돈이 없으니까 우선 먹고 사는 것을 제외하고는 돈을 쓰지 않거든요. 요즘 재래시장은 바닥을 치고 있어요." "겨울 한파가 몰아치면 남대문시장은 사람들로 발딛을 틈이 없었어요. 하지만 이젠 지방 도매상들도 잘 올라오지 않아요. 지방에서도 재래시장 물건은 잘 팔리지 않거든요. " 백화점과 대형마트에 밀려나기 않기 위한 재래시장의 몸부림 하지만 언젠가는 중국제품에 점령당할 터 강은아 씨를 만나기 위해 남정상가를 물어물어 찾아가는 길. 상가 앞에서 유독 금갈색 머리를 늘어뜨린 외국인 여자가 두명이 눈에 띈다. 핸드폰을 들고 악세사리 가게를 두리번거리는 남자를 이상하게 여겼는지 음료를 마시며 쳐다보는 모습이 꼭 웃는 것 같다. 기자라고 소개하고 말을 걸어보니 한국어도 유창하다.
국내에서는 물론 해외에까지 '한국대표의류시장'으로 불리우던 명성은 사라졌지만, 악세사리와 아동복 매장으로 입지를 굳히려는 남대문시장의 면모를 확인하는 자리였다. 하지만, 강은아 씨의 설명은 달랐다. 중국제품에 품질, 가격 경쟁에서 점점 밀려나고 있다는 것이다. 강 씨는 "2~3년전만 해도 한국 물건이 좋고 가격도 괜찮다는 얘기를 들을 수 있었지만, 요즘은 중국 제품도 한국 제품 못지 않다는 평가를 듣고 있어 국내 공장이나 대리점에서도 직접 생산하지 않고 수입해 팔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강 씨는 "한 상점에서 수입해 잘 팔리는 제품은 너도나도 할 것 없이 경쟁적으로 들여와 팔기 때문에 제품은 비슷비슷하다"고 분위기를 설명해 주었다. 아울러 강 씨는 지방상인들이 줄어든 이유에 "중국제품의 영향이 크다"고 꼬집었다. 강 씨는 "지방 재래시장에 손님이 줄어든 이유도 있지만, 도매상들이 중국 제품을 수입해서 쓰는 경우가 많아 남대문 시장에서 도매로 떼가는 일이 줄었다"고 지적했다. 재래시장이 살아나는 길, 제품을 고급화하고 판매전략을 다양화해야 그러면서 강 씨는 "독특한 디자인을 개발하고 판로를 개척하지 않으면 재래시장은 없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시장에서도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처럼 물건을 더욱 고급화 해야 살아납니다. 재래시장에서도 단가가 센 것이 잘 팔리는 것을 보면 좋은 품질의 제품이 잘 팔린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전자상거래 등 다양한 판로를 개척해서 손님을 맞는 것도 중요합니다. 재래시장 의류상가 번영회에서 인터넷 쇼핑몰을 열어 짭짤한 재미를 봤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다른 남대문 상가들도 이런 전략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아직 거기까지는 나서고 있지 못합니다. 잘 모르기도 하고요. 마지막으로 강 씨는 "머지 않아 중국시장을 개척할 것"이라면서 "한국에서는 인건비, 생산비 경쟁이 안되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밝혔다. 그녀는 또 "전자상거래를 통해 다양한 상품판매에도 나서겠다"고 덧붙였다. 언젠가부터 재래시장의 풋풋한 인심보다는 대기업에서 체인으로 운영하는 백화점과 할인마트로 향하는 사람들을 자주 본다. 하지만, 백화점과 할인마트에서는 느낄 수 없는 덤과 깍아주기가 아직도 남아있는 재래시장의 맛이 그립다는 것은 괜한 생각일까. 물질적 가치로 환산할 수 없는 인간의 정이 넘치는 재래시장이 활성화되길 빌며 인터뷰를 마친다. 남대문 상가의 아주머니들은 이구동성으로 기자에게 말한다. 아이들 가르치는 건 둘째 치고 먹고 살기도 힘들다고 말이다. 이동권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