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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이젠 유사홈쇼핑이라 부르지 마라

이상훈 고양 2005. 10. 7. 15:04
[특집]이젠 유사홈쇼핑이라 부르지 마라
[뉴스메이커   2005-10-07 10:13:13] 



‘IMF가 낳은 옥동자.’

1997년 한반도에 몰아닥친 외환위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시련을 안겨줬다. 하지만 위기는 곧 기회. 인포머셜(informercial, 정보를 뜻하는 단어인 information과 상거래 또는 광고를 의미하는 commercial의 합성어) 홈쇼핑도 IMF의 어두운 터널 속에서 꽃을 활짝 피운 사례다.

인포머셜 홈쇼핑의 힌트는 지상파TV가 제공했다. 부도위기에 몰린 유망 중소기업의 제품들을 여의도 중소기업종합전시장에 모아놓고 매일같이 생중계를 하면서 판로를 개척해준 것이 오늘날 인포머셜 홈쇼핑의 효시가 됐다.

이때 웃음을 지은 것은 기사회생한 중소기업만이 아니었다. 방송을 지켜보던 전국의 유통업자들이 무릎을 치며 여의도로 몰려들었다. 될 만한 상품을 골라내기 위한 ‘눈도장 찍기’였다. 이들은 곧바로 3류 탤런트를 동원해 어설프게 제작한 광고를 들고 전국의 유선방송국으로 뛰었다. 심의를 거치지 않은 비심의 광고였음은 물론이다.

당시는 케이블TV 시장이 정리되기 전이어서 전국에는 3500여 개에 달하는 유선방송국이 난립해 있었다. 이들 유선방송국은 지상파 프로그램을 장르별로 녹화해 드라마·영화·오락채널 등으로 운영했는데 인포머셜 홈쇼핑은 이곳에 뿌리를 내렸다. 지방의 중장년층을 대상으로 한 건강식품이 날개돋친 듯이 팔려나가 최고의 히트를 기록했다.

인포머셜 홈쇼핑 업계 최초로 코스닥 등록까지 한 ㅅ사의 경우 이때 유선방송에서 판매한 인삼·녹용제품의 매출이 종잣돈 구실을 한 것으로 알려진다. 건강식품의 뒤를 이어 각종 아이디어 상품들이 효자 구실을 했다. 만능믹서와 온열매트, 자동차 흠집제거제, 매직블럭 등 대박상품이 계속 쏟아져 나왔다.

인포머셜 홈쇼핑 ‘시련의 계절’

인포머셜 홈쇼핑은 TV홈쇼핑의 한 갈래로 보통 ‘유사홈쇼핑’으로 불린다. 인포머셜 홈쇼핑 관계자들은 유사홈쇼핑이라는 용어를 탐탁지 않게 여긴다. “유사홈쇼핑이라는 말은 케이블TV의 채널사업자(PP)로 홈쇼핑 생방송을 하고 있는 5대 사업자(GS, CJ, 우리, 현대, 농수산)가 인포머셜 홈쇼핑 전체를 매도하기 위해 악의적으로 유포한 용어”라고 반발한다.

대립각을 세우고 있지만 인포머셜 홈쇼핑과 TV홈쇼핑은 우리나라의 새로운 유통채널을 연 주역이다. 인포머셜 홈쇼핑 사업자들의 모임인 (사)한국일반홈쇼핑기업협회(KHOSCA)측이 밝힌 지난해 매출총액은 8000억 원 규모에 이른다. 5대 홈쇼핑 사업자가 벌어들인 4조2000여억 원에 비하면 적은 액수지만 인포머셜 홈쇼핑이 어엿한 유통채널로서 자리 잡았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인포머셜 홈쇼핑 업계의 표정은 어둡다. 매출은 2003년 이후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고 시장상황은 여전히 인포머셜 홈쇼핑에 불리하게 돌아가는 중이다. 경기침체의 영향을 받기는 5대 사업자도 마찬가지지만 맏형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을 뿐 아니라 밑에서는 인터넷 쇼핑몰이 무서운 속도로 치고 올라오고 있다. 게다가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지 못한 인포머셜 홈쇼핑 업계는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에 적절한 대응을 못해 궁지로 몰리는 형국이다. 한국일반홈쇼핑기업협회 사무국 최종배 과장은 “지금 당장 닥친 문제를 풀기에도 힘이 부치는 상황”이라고 털어놓았다. 현재 인포머셜 홈쇼핑이 직면한 가장 큰 시련은 영향력 있는 채널들이 하나둘씩 인포머셜 광고를 줄이고 있는 것이다.

8월 11일 장원홈쇼핑 직원 100여 명은 MBC 경영센터 앞에서 집회를 벌였다. 케이블·위성채널인 MBC드라마넷이 장원홈쇼핑과의 인포머셜 광고계약을 해지한 것에 항의하는 시위였다. 장원홈쇼핑측은 “케이블TV 출범 초기 MBC드라마넷의 인기가 없을 때도 광고 물량을 줬는데 이제 와서 일방적으로 해지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거세게 반발했다.

케이블TV 업계의 매출에서 인포머셜 광고가 차지하는 비중은 엄청나다. 한 관계자는 “인포머셜 광고를 중단하면 당장 쓰러지는 채널이 전체의 80%가 넘는다”고 말했다. 대부분 채널이 인포머셜 광고 매출을 제외하면 뚜렷한 수입원이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런데도 방송사가 돈이 되는 광고를 내보내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일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 MBC드라마넷뿐만이 아니다. 지상파 방송사가 운영하는 채널과 온미디어 계열 등 시청률 상위를 차지하는 채널들이 점차 인포머셜 광고 비중을 줄여나가고 있다.

방송사들이 표면적으로 내세우는 이유는 “채널 이미지를 높이기 위해서”이다. 인포머셜 홈쇼핑 업계 관계자들은 “진짜 이유는 다른 데 있다”고 주장한다. 인기채널의 경우 “일반 광고만으로도 충분한 광고매출을 올릴 수 있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어려울 때 힘이 되준 동지에서 한순간에 헌신짝 신세가 된 것도 억울한데 이미지를 실추시킨 주범으로 찍혀버렸으니 인포머셜 업계 입장에선 이만저만 서운한 게 아니다.

점점 멀어지는 대박의 꿈

시청률이 높은 채널이 인포머셜 광고를 중단하면 당장 해당 인포머셜 홈쇼핑 업체의 매출은 급락한다. 인포머셜 홈쇼핑 업계 전체도 깊은 내상을 피할 수 없다. 전체 매출에서 시청률 상위 채널이 차지하는 비중이 압도적이기 때문이다. 거대 채널의 이탈은 자연스럽게 대박의 가능성을 더욱 희박하게 만들었다.

각 채널별 광고비가 늘어난 것도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통신판매전략연구소 이승재 소장은 “초기에는 경쟁이 없고 시청자들의 구매력도 높아 마진이 상당히 좋았지만 지금은 광고비 비중이 35~50%까지 늘어났기 때문에 흑자를 내는 회사가 많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때 35%를 넘는 것으로 추정됐던 마진율은 10% 미만으로 떨어져 있는 상태이다. 최종배 과장은 “지금은 상품에서 원가의 비율이 40~50%를 차지하기 때문에 비심의 광고와 편법을 쓴다고 해도 예전과 같은 대박은 꿈도 꾸지 못하는 상태”라면서 “본전 찾기도 급급한 형편”이라고 말했다.

높아진 광고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아예 채널을 운영하는 인포머셜 홈쇼핑 업자들도 나타났다. 방송사업자가 되려면 자본금 10억 원의 조건을 충족시켜야 하지만 시장에 급매물로 나온 채널을 인수하는 데는 3억~5억 원이면 충분하다. 하지만 사업목적이 방송에 있지 않고 홈쇼핑에 있다보니 프로그램에는 투자하지 않고 재방에만 의존해 “방송의 물을 흐린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한 관계자는 “방송의 공익성을 무시하고 자기 물건 팔아먹는 데만 급급하다면 3류 장사꾼이라는 오명을 절대 벗지 못할 것”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적’은 내부에 있다

한경희스팀청소기, 도깨비방망이, 뉴세라녹즙기…. 모두 인포머셜 홈쇼핑을 통해 소개된 우리나라 중소기업의 제품들이다. 인포머셜 홈쇼핑에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TV홈쇼핑까지 진출해 수백억 원대의 매출을 올리는 ‘신데렐라’가 된 대박상품이기도 하다. 시작부터 인포머셜 홈쇼핑은 중소기업 제품의 새로운 유통채널로 집중조명을 받았다. 그러나 지금은 그 지위가 상당히 훼손됐으며 인포머셜 홈쇼핑의 정체성마저 크게 흔들리고 있다.

한 관계자는 “인포머셜 홈쇼핑도 이제는 자본력이 없으면 버틸 수 없는 구조로 점점 변하고 있다”면서 “대박을 꿈꾸면서 생겨나고 또 사라지는 신기루 같은 시장”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제품 하나를 선보이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대략 3억 원 정도인데 다행히 하나를 성공시킨다 해도 그 다음은 기약할 수 없기 때문에 웬만한 자금과 마음가짐 없이는 덤벼들 생각을 말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초기 인포머셜 홈쇼핑 시장을 호령했던 업체들 가운데 지금까지 살아남은 곳이 드물 정도로 ‘손바뀜’이 활발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좁아진 성공의 문을 두드리려면 무조건 많이 파는 방법밖에 없다. 인포머셜 홈쇼핑 전체가 이른바 ‘물량떼기’에 팔을 걷어붙인 것이다. 업체들이 앞다퉈 검증된 외국 제품을 직수입하거나 싸구려 중국산을 들여온 결과 우리나라 제품의 비중은 20% 밑으로 떨어졌다.

인포머셜 홈쇼핑 업체끼리 서로 상품을 베끼는 관행도 여전하다. 한쪽에서 재미를 본다 싶으면 금방 비슷한 제품을 내놓는 출혈경쟁이 그칠 줄 모른다. 한 상품기획자는 “한 번은 광고까지 똑같이 만들어 틀어대는 바람에 큰 손해를 봤다”면서 “그 업체가 만든 불량품까지 우리 쪽으로 반품되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겪었다”고 화를 냈다. 그는 “인포머셜 홈쇼핑 업체들의 협회도 생겼으니 회원사들끼리만이라도 제품에 대한 독점권을 인정하는 자율 규약을 만드는 등 질서를 잡아나가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앞으로 2~4년은 금융상품이 전성기”

인터뷰 / 미래와 행복 박재욱 이사

“인포머셜 홈쇼핑의 차세대 성장동력은 보험입니다.”

믿지 못할 일이지만 지난해 TV홈쇼핑 업계는 팔 상품이 고갈돼 큰 어려움을 겪었다. 이 난국을 타개한 상품이 바로 보험이다. ‘보험아줌마’로 통용되는 설계사를 통해서만 가입할 수 있는 것으로 알았던 보험이 홈쇼핑 전파를 타는 순간 콜센터에는 주문전화가 폭발했다. 올해 초 5대 홈쇼핑의 사장이 모인 자리에서 “보험이 아니었으면 자리보전하기 힘들었을 것”이라는 말까지 오갔다고 전해진다.

인포머셜 홈쇼핑에서도 상황은 비슷하다. 보험이 ‘떠오르는 태양’이 되고 있다. 미래와 행복 박재욱 이사도 보험의 가능성을 크게 봤다. 그는 “7월 8일 첫 광고를 내보냈는데 하루에 700통 정도의 상담전화가 걸려올 정도로 인기가 높다”고 말했다. 가입률은 30% 정도. 일반 상품의 구매율인 60%의 절반에 불과하지만 수익률은 훨씬 좋은 편이다. 게다가 보험에 관심을 보이는 시청자의 정보를 DB화할 수 있다는 점은 무한한 가치를 가진다. 배송비가 들지 않는다는 점도 보험만이 가지는 장점이다.

위험요소가 없는 것은 아니다. 보험은 특성상 설명하기가 복잡한 상품이다. 상담전화가 오고 계약 성사될 때까지 보통 15일 정도가 걸린다. 즉각 반응이 오는 일반 상품과는 큰 차이가 있다.

박 이사는 “무엇보다 설계사가 제공하는 제한된 정보만 접하던 소비자에서 무한의 보험 정보를 전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보람을 느낀다”면서 “앞으로 2~4년은 보험을 비롯한 금융상품이 인포머셜 홈쇼핑의 대세를 이룰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전망했다.

<유병탁 기자 lum35@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