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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도 하기전 기업가정신 꺾인다

이상훈 고양 2005. 9. 15. 00:04
창업도 하기전 기업가정신 꺾인다
[매일경제   2005-09-14 07:46:10] 

최근 중소제조업체를 설립한 K사장은 창업과정만 생각하면 지금도 화가 치민다.자금이 넉넉지 않았던 K사장은 법무사 비용을 아끼려고 직접 정관, 창립총회의사록, 이사회 의사록 등 관련 서류를 준비해 설립작업을 했다.

 

서류를 준비하다보니 제대로 된 양식조차 없었다. 공증절차를 밟을 때 두 번이나 헛걸음을 해야 했다. 단지 법무사가 작성한 양식이 아니어서 보기에 불편하다는 이유에서다. 등기소에서는 제출서류 어디에 수입인지를 붙이는지 물어봤다가 "법무사한테 가서 물어보라"는 차가운 대답만 들었다.

법무사에게 맡기면 1주일이면 충분한 회사 설립을 K사장은 두 달이나 걸렸고그 사이 납품처 확보 등 더 중요한 일은 손을 놔야 했다.

복잡한 창업절차와 불필요한 비용 등으로 기업가 정신은 창업 준비과정에서부터 꺾이고 만다.

 

◆ 창업 때부터 범법자 양산=대기업 과장 출신인 P사장. 지난해 법무사에게의뢰해 무역회사를 세웠지만 그 과정에서 적지 않은 마음고생을 해야 했다.

생활용품을 수입판매하기 위한 구매대금을 제하고 나니 최저자본금 5000만원을마련하기 어려웠던 것.P사장은 법무사가 소개해준 사채업자에게 5000만원을 며칠간 빌려 자본금을 대고 회사를 설립한 후 곧바로 그 돈을 인출해 되갚았다. 25만원의 이자비용이더 들어갔을 뿐 아니라 엄밀히 말해 '자본금 위장납입'이란 상법상 범죄행위를저지른 것이다.

실제 산업연구원(KIET)이 13일 발표한 '창업절차 간소화 및 창업비용 절감 방안'에 따르면 최저자본금제도는 창업자 중 90.2%를 범법자로 만들고 있다.

운영자금이 빠듯한 창업자들이 최저자본금을 사채업자로부터 빌려 등기에 소요되는 2~3일 동안 주금을 납입한 후 되갚는 위장납입 형식은 이제 관행이 돼버렸다. 자기 돈으로 자본금을 납입한 창업자는 10명 중 1명도 안 된다.

 

◆ 복잡한 절차ㆍ서류는 법무사만 배불려=조사에 의하면 창업자 중 57.4%가과다한 구비서류와 복잡한 절차 때문에 창업과정에서 애로를 겪고 있다. 19.7%는 과다한 법인설립 비용을 애로사항으로 꼽았다.

모집설립방식을 택해 주식회사를 설립하려면 모두 16단계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를 위한 구비서류만도 37개 종류의 58개 서류가 필요하다. 이러니 창업자 중96.7%가 법무사에게 의존해 회사를 설립해야 하는 실정이다. 창업자가 모든 과정을 직접 수행하는 경우는 3.3%에 불과하다.

 

◆ 자본금제 폐지ㆍ서류 감축 시급=창업과정의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서는최저자본금제도를 폐지하고 구비서류를 감축하는 게 우선이다.

양현봉 KIET 중소ㆍ벤처기업실장은 "최저자본금제도 폐지 등 제도가 개선되면구비서류는 37종류 58개에서 41.4% 줄어든 28종류 34개로 간소화된다"며 "창업비용도 현재 100만5000원에서 51만5000원으로 48.8% 절감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도 창업자 대다수가 자본금 위장납입 방식을 택하고 있기 때문에 최저자본금제도의 근본 취지인 채권자 및 소액주주 보호, 주식회사의 신뢰성 확보 등에아무런 실효성이 없다.

프랑스는 지난해 7500유로인 최저자본금제도를 폐지했으며 일본도 지난 6월 1000만엔이던 최저자본금을 없앴다.

이와 함께 정관, 창립총회 의사록, 이사회 의사록에 대해 공증받도록 한 것을정관만 공증하도록 개선하고 공증기관을 공증사무소만이 아닌 전국 57개소 법률구조공단으로 확대할 필요도 있다.

한정화 한양대 교수는 "기업가 정신이 무엇보다 강조되는 데다 창업을 통한 신성장동력을 찾아야 한다"며 "창업제도 정비는 중소기업 육성이라는 큰 그림에서 다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임상균 기자 / 이승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