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를 배우자

자영업, 벼랑 끝에 서다

이상훈 고양 2009. 3. 17. 07:57

자영업, 벼랑 끝에 서다

  

<앵커멘트>

 

경기 침체로 서민 경제의 근간인 자영업자들이 직격탄을 맞고 있습니다. 최선을 다해 열심히만 하면 잘 될 줄 알았던 자영업자들이 줄줄이 폐업 대열에 동참하고 있는 것입니다. 과잉이란 지적까지 나오던 자영업자 6백만 명 시대도 8년 만에 막을 내렸습니다. 이렇게 된 데는 경기 침체 뿐 아니라 여러 문제들이 복잡하게 얽게 있기 때문입니다. 벼랑 끝에 선 우리 자영업, 그 실태를 들어봤습니다.


<리포트>


옷가게와 음식점들이 몰려 있는 서울의 한 대학가 거리. 비교적 오고가는 사람들이 많은 큰길가 모퉁이를 돌아서니 문을 닫아놓은 가게들이 하나, 둘 눈에 띕니다. 작은 골목으로 들어갈수록 사정은 더 나빠져서 한두 집 건너 하나씩 빈 점포들이 나타납니다.


<녹취>"체감 경기요? 보시면 알잖아요. 보시면 썰렁하잖아요. 그게 체감 경기잖아요."

 

주변 상인들은 본격적인 경기 침체가 시작된 지난해 말부터 문을 닫는 가게들이 늘기 시작했다고 말합니다. 소비심리가 얼어붙으면서 소비자들이 옷과 액세서리 같은 데서부터 지출을 줄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녹취>옷가게 주인:"한 두 세달 된 것 같아요. 여기뿐만 아니고, 가게 뺀다는 사람 되게 많아요. 계약 기간만 끝나면, 들어올 사람은 없고, 가게 뺄 사람은 많죠."

 

국내 자영업자 수는 지난해 11월까지만 해도 6백만 명을 넘었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12월과 1월 두 달새 558만명까지 줄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자영업 종사자 비율은 OECD 국가 평균의 2배에 가까운 30%대에 달합니다. 안 그래도 너무 많던 자영업자들이 경기 침체에 직격탄을 맞고 있는 것입니다.


<인터뷰> 금재호 (박사/노동연구원):"유통업이나 음식 숙박업 같은 경우는 상당히 전체 경제구조에 비해서는 비중이 너무 큰거예요. 생산성도 낮고...생산성 합리화에 어떤 흐름이 발생하고, 그 흐름에 따라 승자와 패자가 갈리게 되는거죠."

 

능숙하게 스파게티를 만드는 주방장, 홍성오씨. 그는 공무원 생활을 그만두고 여러 가지 자영업에 도전했다가 3년 반 전 부인과 함께 이 스파게티 전문점을 열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주방장 생활도 오늘이 마지막입니다. 영업을 할수록 빚만 느는 상황을 견디다 못해가게 문을 닫기로 한 것입니다.


<인터뷰>홍성오:"솔직한 얘기로 여기 투자한 것에 비해서 권리금이나 이런 건 모두 다 포기하고 가는 거예요. 안그러면 나갈 수 있는 방법이 그방법 밖에는 없더라구요. 포기 안하면 제가 갈수록 더 힘들어지니까."

 

초보자도 쉽게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사업이란 말에 덜컥 시작했던 프랜차이즈 가게. 하지만 장사는 가맹점 본사의 말처럼 잘 되지 않았습니다.


<인터뷰>김명자:"매출이 떨어지는데 왜 이러냐고,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 매출이 떨어지면 떨어지는 대로 그 상권에 맞게 본사에서 알아서 다 해준다고 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자영업자 각 매장 점주들이 알아서 해라..."

 

결국 2억 5천만 원 가까이 투자해서 시작한 사업은 3억 원에 가까운 빚만 남긴 채 문을 닫게 됐습니다.


<인터뷰>김명자:"(어떤 게 제일 마음 아프세요?) 고생한 보람이 없다는 거. 그러니까 저는 매출이 나오든 안나오든 최선을 다했어요. 고객들한테도 저를 찾아주는 손님들이 맛있게 식사하고 갔을 때는 그 즐거움이 있었기 때문에, 단골 손님도 많이 오셨고, 그래서 참 좋았는데, 끝까지 잘해보고 싶었어요."

 

안양 주택가에 자리 잡은 작은 가게. 원래 한 포장 갈비 배달 프랜차이즈 업체의

가맹점이었던 이곳은 지금 개점 휴업 상탭니다. 지난해 초 개업한지 채 6개월도 안 돼 본사가 소리 소문없이 연락을 끊었기 때문입니다. 물류를 공급받던 업체에서 갈비만 납품받아 근근이 장사를 이어가고 있는 상황. 하소연할 곳조차 찾지 못한 부부는 가게가 새 주인을 찾을 때까지 궁여지책으로 햄버거를 같이 팔고 있습니다.


<인터뷰>박정자:"어차피 이건 더 이상 기대할 것도 없고, 포기한 상태이고 제가 다른 방법을 생각하고 있어요. 그렇다고 경기가 좋으면 선뜻 시작도 해보고 하겠는데, 그것도 아니잖아요."

 

당장 닥친 생활고보다 부부를 더 참을 수 없게 만드는 것은 믿었던 회사에 속았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는 겁니다.


<인터뷰>신명호:"속은 게 가장 화나죠. 처음에 약속했던 것이 이행된 것이 하나도 없잖아요. 오픈하자마자 담당 바뀌고, 그 뒤에 온 분한테 얘기하면 자기네는 모른다고 하고..."

 

다음날, 문제의 체인점 본사가 있었다는 곳을 찾았습니다. 갈비 배달 체인점은 완전히 없어지고, 다른 브랜드의 체인점들이 가맹점을 모집 중입니다.


<녹취>"일단 제가 왔을 때 계셨던 분들 중에 (그 회사)사람도 안계시고, 저희가 예전에 사업부가 있었다는 것은 알고 있어요.(아까는 모른다고 했잖아요?)"

 

완전히 다른 회사라고 하는 사무실엔 아직도 문제의 갈비 배달 프랜차이즈 업체의 홍보 전단이 곳곳에 눈에 띕니다. 문제의 업체에서 일하다가 퇴사했다는 직원과 어렵게 연락이 닿았습니다.


<녹취>프랜차이즈업 관계자:"회사 경영자가 수익을 가지고 다른 아이템에 투자를 하다 보니까 장수할 수 없는, 그러니까 가맹점을 잘 관리할 수 없는 상황이 돼서 저도 몇 개월 급여가 연체되고 그래서 부득의하게 퇴사를 하게 됐습니다."

 

초보자에게도 안정적인 수익이 보장될 거라며 창업을 권했던 프랜차이즈업계, 하지만 이런 일들이 심심치 않게 벌어지면서 어렵게 자영업에 나선 사람들을 울리고 있습니다. 자영업 붕괴의 또 다른 원인은 없는 것일까? 부산의 한 재래시장 골목엔 점포 세를 놓는다는 전단을 붙여놓은 집들이 수두룩합니다.


<녹취>"간판이 없잖아요. 간판도 안 걸고 하다가, 말고, 그러니까 간판이 이런 식이예요."

 

무작정 창업했다가 몇 달을 버티지 못하고 망하는 집들이 그만큼 많단 얘깁니다. 이 시장에서 15년째 떡방앗간을 운영하고 있는 김명한씨. 넉넉지는 않았지만 이 방앗간 덕에 두 아들을 다 키워냈습니다. 든든하게 자라난 아들들은 가업을 잇겠다며 아버지 일을 본격적으로 거들고 나섰습니다. 하지만, 김 사장에겐 요즘 고민이 생겼습니다. 시장 입구에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수퍼마켓이 들어설 예정이기 때문입니다.


<인터뷰>떡방앗간 사장:"국회의원이 들어줍니까, 시장이 들어줍니까, 구청장이 들어줍니까. 우리가 나서서 주먹 들고 흔들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기필코 막아내야죠. 애들에게 이 방앗간을 희망을 갖고 일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줘야 되는 게 저희들의 사명인 것 같습니다."

 

김 사장을 포함한 시장 사람들이 상인회 사무실에 모였습니다. 시장 상인들이 힘을 모아 대형 유통업체가 운영할 수퍼마켓가 들어오는 것을 막아보자는 것입니다.


<인터뷰>윤명동:"지금 저희 동네 인구에 비해서도 자영업 숫자가 많은 편입니다. 거기에다 대기업이 소형 수퍼에까지 진출하는것은 지난번에 듣고 한 번 알아보니까 대기업이 진출하면 그 주위 상권은 다 죽더라구요."

 

시장 상인들은 요즘 동네 사람들을 대상으로 매일같이 서명 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어깨에 띠를 두르고 삭발을 한 채 거리에 나서는 평생 안 해보던 일을 하는 건, 그만큼 자신들의 처지가 절박하단걸 알리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어렵다는 시기, 동네 상권을 파고드는 대기업은 영세 자영업자들에겐 삶을 벼랑으로 내모는 또 하나의 위협입니다. 중고 주방 가구들을 사고 파는 서울의 황학동 시장. 음식점 창업에 필요한 갖가지 물건들이 새 주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끔씩 둘러보는 손님들만 있을 뿐 실제로 물건을 사가는 사람들은 거의 없습니다. 특히 불황이 깊어진 요즘은 몇 달 전에 팔았던 주방용품들을 되 사오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인터뷰>장익(중고 제품 사장):"저희들이 물건 파는데 팔고나서 잘 쓰면 좋은데, 오래 못 하고 금방 우리한테 전화를 해요. 두 달 전에 판걸 다시 수거해 가라고. 그땐 마음이 안 좋죠."

 

최근 한 경제연구원에선 우리나라 자영업자들의 행복지수가 ‘무직’과 비슷하다는 조사 결과를 내놨습니다. 그만큼 상당수 자영업자들의 삶이 팍팍하단 얘깁니다.


<인터뷰>금재호 (노동연구원):"이 사업을 접으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될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이 사람들에게 어떤 새로운 길을 제시하려고 하면 이 사람들을 깊게 이해하고, 필요가 뭔지 정확하게 판단해서 거기에 대한 적합한 수단과 방법을 제시할 수 있는 컨설턴트들이 필요한데, 그런 사람들이 아직 부족한 거죠."

 

영세 자영업자들에게 창업이나 운영자금을 대출해주고 있는 서울 구로구의 소상공인지원센터. 지난해 말 남편이 직장을 잃었다는 이 주부도 연 2.5%의 낮은 이자로 창업 자금 일부를 빌릴 수 있다는 말에 이곳을 찾았습니다.


<인터뷰>창업 예정자:"애기아빠가 작년 연말까지 직장생활 했었거든요. 갑자기 실직되는바람에 달리 기술이 있는 직업도 아니고, 할 수 있는 건 자영업 같은 것 밖에 없잖아요. 그래서 자영업 생각해보다가..."

 

구로동에서 25년째 작은 슈퍼마켓을 운영하고 있는 김광기씨. 김 씨도 시중 은행에선 더 이상 대출을 받을 수 없단 말만 되풀이해 듣다가 결국 이곳 문을 두드렸습니다. 삶의 전부를 걸었던 가게가 그냥 문을 닫는 것을 보고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인터뷰>김광기(슈퍼 경영):"더 이상은 안되겠다, 장사를 새롭게 해야 되겠다, 너무 오래됐고, 시설도... 내부도 다시, 페인트칠이나 시설도 다시 해서 그럼 조금이라도 더 팔리겠지..."

 

끝을 알 수 없는 불황, 분명한 건 자영업자들의 폐업은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이란 겁니다. 이들이 지금의 위기에 좌절하지 않고 어려움을 극복해, 삶을 이어갈 수 있도록 체계적인 지원과 관심이 필요한 때입니다.

 
[경제] 이하경 기자
입력시간 : 2009.03.15 (22:31)